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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Me 

프롤로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금 작업을 마쳤는지 물감냄새가 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방안이 눈에 들어온다. 책상 위로 천으로 만든 수제인형2개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빨간 입술, 하얀 몸체, 허공을 가르듯 다리를 벌리고 날아가는 모습의 인형이다. 바닥에 발디딜 틈 없이 널려진 그림들...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방 안에 있는 화면이 모두 인형을 담고 있다. 문 옆에 층층이 세워진 나무틀의 그물망, 그 옆에 세워진 유리판에서조차 흔적으로나마 남아있다.  마치‘분홍신’의 주인공처럼 주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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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기억 속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어릴적 발레를 잠시 배웠던 것에서 자신의 가장 밝은 모습을 떠올린다. 연습실에 깔린 양탄자가 호흡기에 좋지 않아 발레를 그만둔 이후 한동안 발레리나로서 꿈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그것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꿈을 구현해낸다. 곱슬머리에 빨간 튀튀를 입고 날렵하게 춤추는 인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점프를 할 때 기분이 좋았던 것을 회상하면서 만든 인형의 모습은 바로 점프를 하는 인형이다. 이러한 발레하는 인형은 작가를 대변하는 매개체이다. 인터넷의 아바타처럼 작가를 대신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당초 수제인형은 작가가 한정된 제작조건 아래서 만든 작품이다. 한동안 작업실 없이 지내던 작가는 집에서 손쉽게 작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었고, 광목천으로30여점의 수제인형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최근 작업은 모두 그 인형작업에서 출발하여 이미지의 재생산화 혹은 이미지의 다양화로서 나타난 결과이다.

  제일먼저 애니메이션을 말하자면 현실에서 출발하여 미지의 세계를 춤을 추면서 돌아다니는 인형의 여행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미 여행에 관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바 있으며 이번 작품 역시‘Travel me'라는 주제처럼 낯선 공간을 여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전 작품에서 아버지와 자신의 복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면 최근 작업은 제목에서 말하듯 자신으로 향한 여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지닌다. ‘페르시아의 여인’이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양탄자를 타고 춤추기 시작하여 점차 초현실주의적인 미지의 세계를 부유하는 인형의 모습은 작가가 지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점이 교차되는 접점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편 같은 인형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회화작품은 예전의 드로잉 작품에 비해 작업이 한층 더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즉, 예전의 중첩된 선으로 이루어진 드로잉보다는 필획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강조되고 있으며, 동시에 한결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로 인하여 내면세계로 향한 탐구라는 의도가 잘 살아나있다. 또한 최근 작업의 특징은 화면에 색채가 더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작가가 지금의 작업을 시작할 즈음 빨간 튀튀를 입고 있는 발레리나의 꿈을 꾸게 된다. 그런 후 그의 작품에는 유독 빨간 색이 두드러져 보인다. 오랫동안 묵색의 수묵작업 위주로 작업을 해온 작가에게 다양한 색채를 이용한 표현방법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처럼 여겨졌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일련의 회화작품들은 작가가 색채에 대한 감각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직접 그린 것 이외의 회화작품들은 실크스크린으로 이미지를 찍은 다음 그 위에 색을 더하는 식으로 표현되었다. 마치 판화 같은 표현방법이 처음 시도된 이후 작가는  새로운 창작동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혼합적 방식은 당분간 지속적으로 제작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듯 작가의 최근 작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탐구적인 노력이 돋보인다. 주제 뿐만 아니라 재료,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종이 위의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캔버스에 드로잉하기도 하며, 유리를 겹쳐 입체화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그 위에 드로잉을 덧입히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2차원의 화면은 제한된 공간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도 한정되어 있으나 애니메이션 작업은 많은 설명과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전의 개인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회화작품의 연장선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작업을 병행한다. 인형이라는 구체적인 조형체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다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은 그 자체로서 중첩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다소 유치해보이는 인형의 모습이 작가의 숙련되지 않은 손재주에서 비롯되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완성인 듯 보이는 인형을 시작으로 하여 인형의 이미지 위에 무수한 붓질과 색, 그리고 화면이 중첩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서경의 최근 작품들을 통해 꾸준한 작업을 통해 작품세계를 이루어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고, 개개의 작품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류지연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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